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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정보

연명의료중단부터 안락사까지: 죽음 공부의 저자가 알려주는 존엄한 마지막을 위한 준비

by 건강의발견 2025.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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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성찰: 신경외과 전문의가 들려주는 죽음 공부

 

 

 

죽음은 우리 모두가 마주하게 될 불가피한 현실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준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준비하는 것은 삶의 질을 높이고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오늘은 신경외과 전문의이자 '죽음 공부'의 저자인 박광우 의사의 통찰을 바탕으로,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네 가지 중요한 관점을 소개합니다.

 


죽음의 생물학적 현실: 우리가 모르는 고통스러운 과정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잠들듯이 고요하게 떠나는 것'으로 상상하지만, 실제 의학적 관점에서 죽음은 그렇게 편안한 과정이 아닙니다. 인간은 생물학적 제한을 가진 존재이며, 우리 몸은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죽음은 이러한 항상성이 깨지는 과정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합니다.

 

심장 박동이 멈추고 호흡이 정지하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일어나기보다는, 대부분 신체적 고통을 동반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먹지 않고 스스로 굶어서 평화롭게 죽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영양 공급 중단은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병원이나 요양원에서는 비위관(Levin tube)을 통해 영양을 공급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지므로, 단순히 '먹지 않기'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러한 생물학적 현실을 이해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현실적인 준비를 할 수 있게 해줍니다. 죽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연장선이지만, 그 과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연명의료결정제도: 한국의 현실과 한계

 

한국에서는 2018년부터 연명의료중단에 관한 법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 제도는 회복 가능성이 없고 사망이 임박한 상태에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이 제도가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연명의료중단은 다음과 같은 절차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환자가 사전에 연명의료중단에 대한 의향서를 작성해두거나,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향후 연명의료중단 계획을 수립해두어야 합니다. 만약 이러한 문서가 없다면, 두 명 이상의 의사가 확인하거나 가족 전원의 일치된 합의를 통해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 제도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만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임종과정이란 의사와 전문가의 판단에 따라 회복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상태가 악화되어 사망이 임박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아직 임종과정에 접어들지 않은 환자는 이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연명의료중단이 결정되면 심장 강화제 중단, 정맥 수액 중단 등의 조치가 취해질 수 있지만, 기본적인 약물 치료는 계속됩니다. 이처럼 한국의 연명의료결정제도는 제한적이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적용 범위가 좁습니다.

 


안락사와 존엄사: 국내외 현황과 논의

 

전 세계적으로 안락사와 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7명 중 10명이 안락사에 찬성하며, 의사들 중에서는 82%가 존엄사 조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설문 결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는 소극적 안락사(연명의료중단)만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으며, 적극적 안락사나 의사 조력 자살은 아직 허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안락사는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자발적-소극적 안락사: 환자의 의사에 따라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
  2. 비자발적-소극적 안락사: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
  3. 자발적-적극적 안락사: 환자의 요청에 따라 의사가 약물을 투여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
  4. 비자발적-적극적 안락사: 환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의사가 약물을 투여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

 

현재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캐나다, 콜롬비아, 일부 미국 주 등에서는 의사 조력 자살이나 적극적 안락사가 합법화되어 있습니다. 특히 스위스는 외국인 환자도 안락사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국가로, 한국인을 포함한 많은 외국인들이 스위스의 디그니타스(Dignitas)와 같은 기관을 찾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조력사법'이라는 이름으로 의사 조력 자살을 합법화하는 법안이 2024년에 제출되었습니다. 이 법안은 조력사위원회 설립, 전문가 상담, 결정 철회권, 보험금 지급 보장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법안의 향후 진행 상황은 아직 불투명합니다.

안락사 논의는 단순한 법적 문제를 넘어, 생명의 존엄성, 자기 결정권, 의료 윤리 등 다양한 측면에서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알 파치노 주연의 영화 '유 돈 노우 잭'은 미국에서 안락사 논쟁을 일으킨 키보키안 박사의 이야기를 다루며, 이러한 복잡한 문제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습니다.

 


죽음과 관계성: 함께 나누는 마지막 여정

 

죽음은 개인의 고립된 경험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부모, 자녀, 배우자, 친구로서 관계 속에 살아가며, 죽음 역시 이러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웰 다잉(Well Dying)'이란 홀로 편안하게 죽는 것이 아니라, 남겨질 가족들과 함께 준비하고 작별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에게도 '잘 보내드리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유족들은 종종 후회와 미안함을 느끼며, 고인에 대한 책임감을 갖습니다. 따라서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뿐만 아니라, 남겨질 이들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그들의 슬픔을 줄여주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족과 함께 죽음에 대해 자주 대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식사할 때마다 아이들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한 의사의 말처럼, 죽음을 일상적인 대화 주제로 끌어들이고, 자신의 죽음에 대한 바람과 준비 사항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연명의료중단이나 장례 절차 등에 대한 분쟁을 줄이고, 가족 모두가 평안하게 이별을 준비할 수 있게 해줍니다.

 


마치며: 삶과 죽음의 그라데이션

 

박광우 의사는 "불이 꺼진다고 해서 그 순간 죽는 것도 아니고, 불이 켜진다고 해서 그 순간 사는 것도 아니"라며, 삶과 죽음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그라데이션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죽음의 과정은 어렵고 고통스럽지만, 제대로 살아가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로 어렵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 공부는 단순히 죽음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한 성찰의 과정입니다. 죽음에 대해 정확히 알고, 죽음의 과정과 그 상황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에게는 사회적 시스템을 통해 자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논의가 필요합니다. 비록 현재 한국에서는 적극적 안락사나 의사 조력 자살이 허용되지 않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고 의미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권리는 모든 사람에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그것을 회피하는 것보다 직면하고 준비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준비는 결국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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